“자본은 기후변화 해결책 쪽으로 흘러야”
히스로공항 증설을 불허한 영국 법원의 판단처럼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높아지면서 탄소배출이 많은 화석연료 산업이나 생태환경에 악영향이 큰 산업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영국, 프랑스, 캐나다, 멕시코 등 20개국은 2030년 무렵까지 석탄발전소를 모두 폐쇄한다는 ‘탈석탄동맹’을 맺었다. 이들 국가는 늦어도 2040년쯤에는 휘발유, 경우 등 내연기관 자동차 판매도 금지하려 하고 있다. 마크 카니 전 영국 중앙은행 총재가 지난해 4월 투자자들이 기후변화 리스크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자산가격이 급락할 것이라고 경고한 이래, 금융회사들은 속속 화석연료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하거나 철회하고 있다.
금융, 좌초자산을 ‘리스크’로 인식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좌초자산을 “이미 투자되었으나 그 수명이 다하기 전에 더는 경제적 수익을 내지 못하는 자산”이라고 정의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달 기후변화 대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좌초자산의 규모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분석한 기사를 실었다. 그 준거점은 ‘탄소 예산’(carbon budget)인데 미래 어느 시점에 얼마까지 탄소를 배출할지를 정한 것을 말한다. 파리기후변화협약은 기후변화 때문에 경제활동을 완전히 중단할 수는 없으므로 탄소배출의 한계치를 미리 정해두었다. 2100년까지 지구 기온의 상승을 섭씨 2도에서 막는다는 시나리오 아래 화석연료에 할당한 탄소 예산은 1200기가톤(GT)이다. 현재 화석연료 기업들이 보유한 광산이나 유정에 있는 석탄과 석유, 가스에는 약 2910기가톤의 이산화탄소가 담겨 있다. 이 시나리오에서는 약 59%의 화석연료 매장량이 차례로 좌초자산이 된다.
특히 석탄의 타격이 크다. 매장량 가운데 4분의 3이 쓸모없게 된다. 반면 원유는 확보된 매장량의 71%, 천연가스는 92%가 사용될 수 있다. 석탄보다 사정이 다소 낫다고는 해도 29%의 원유가 좌초자산이 될 때 13개 주요 국제 석유회사에서 잠기는 좌초자산은 3600억달러(약 449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지구 기온을 세기말까지 최대 섭씨 1.5도 상승으로 억제하는 좀 더 강화된 시나리오 아래서는 464기가톤의 배출만 허용된다. 이렇게 되면 84%의 화석연료 매장량이 좌초자산이 된다. 이 경우 석유 및 가스회사에서 날아가는 자산은 8900억달러(약 1111조원)로 급증한다. 확보된 매장량이 많은 업체가 당연히 큰 영향을 받는데, 러시아의 통합에너지 회사 로스네프트, 미국의 엑손모빌, 중국의 페트로차이나, 영국의 비피 등이 그렇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40.5%가 좌초 위기
한국은 밀려오는 좌초자산의 해일에서 비켜날 수 있을까? 오히려 다른 나라보다 더 큰 타격이 예상된다. 제조업 수출로 경제를 키웠고, 국제 경쟁력 유지를 위해 화석연료와 원자력에 의지해 산업용 에너지를 싸게 공급해온 구조 때문이다. 총제조업 가운데 좌초위기로 분류할 수 있는 산업(석유화학, 자동차, 석유정제, 플라스틱, 시멘트, 철강, 조선)의 비중은 2017년 생산액 기준으로 전체 제조업의 40.5%, 부가가치 기준으로는 30.6%에 이른다. 여기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84만3500여명으로 전체 제조업 종사자의 28.5%나 된다. 김 위원은 “좌초위기 산업 종사자들이 대기업-남성-고임금·정규직 노동자라는 특징이 있어 이 산업의 붕괴와 고용 축소는 경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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